<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을 쓴 저자 김창길씨는 경향신문 사진기자다. 올해로 16년째 다양한 뉴스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경향신문 지면에 연재하기 시작한 <김창길의 사진공책>을 기반으로 이 책이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신문에 게재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에 대한 글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먼저 시작했다.

그의 사진에 대한 남다른 분석은 블로그를 읽는 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그의 작업은 사진기자들 조차 혀를 차게 할 정도로 탁월했다. 그리고 한국의 사진기자들 중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사진기자 선배인 필자도 그의 연재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을 정도로 그의 글에 빠져들었다. 사진에 대한 그의 글을 읽으며 감탄했고, 때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책의 결과물로 당당히 완성한 그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감히 이 책에 대한 서평은 필자가 감당할 수 없어 출판사의 글로 대신한다. 저자는 오는 10일 오후 7시 반부터 서울 홍대앞 YES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 이번 책과 관련된 강연회를 연다. 작가이자 동물보호단체 활동가인 채희경 작가와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래의 글은 들녘 출판사의 책 서평 내용이다)

무언의 데모.1964. 구와바라 시세이. 눈빛 출판


사진은 무언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미래의 까막눈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예술가 나즐로 모홀리 나기가 80여 년 전 했던 예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진가 도로시아 랭은 카메라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카메라는 카메라 없이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도구다.” 40여 년 전 수전 손택은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손택의 말을 따르자면 지금 이 시대는 카메라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집어삼켜버렸을 만한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사진의 이해』를 쓴 존 버거는 문제의 핵심을 단번에 파고든다. 사진이란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령 괘종시계의 진자를 카메라에 담는다고 할 때, 좌측으로 온 진자를 찍을지 우측의 진자를 찍을지 선택해야 한다. 좌측의 진자를 찍은 사진은 우측 진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무언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 읽기는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도 던져야 한다. 모홀리 나기가 말했던 까막눈이란 사진에서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다.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까막눈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는 괘종시계의 태엽을 감는 작업인 것이다.

방적공장의 어린이 노동자. 루이스 하인. 1908


사진 속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을 읽어낸다.

언론사의 사진부 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바라본 괘종시계의 진자가 자주 왼쪽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라는 존 버거의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 혹은 어떤 사진이 예술적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진의 의미를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에서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사태 당시 홀로 탱크를 막고 서 있는 청년. 당시 AP사진기자인 제프 위드너가 찍었다.

그리하여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의 괘종시계는 탱크맨 사진에서 첫 괘종을 울린다. 이는 저자도, 편집자도 결코 의도했던 순서가 아니다. 신문에 싣기 위해 사진을 모으고 글을 쓰고 그것들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냥 고심해서 글을 엮어낸 결과, 탱크맨이 맨 앞에 놓이게 되었을 뿐이다. 1989년 6월 텐안먼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궁금해서 다시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인데, 우연하게도 2019년 홍콩은 그 사진에 감추어진 세계의 징후를 제 스스로 소환해내고 있었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그 외에도 미국의 대공황,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존더코만더,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던 김주열과 이한열의 사진들 등을 꺼내보았다. 동물권, 여성, 환경과 사진을 연결시켜보고, 디지털화된 사진 찍기 문화의 퇴행적 측면도 파헤쳐보고자 했다.
한 장의 사진에 감추어진 부분을 포착하는 작업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여러 징후들을 온전히 읽어내는 일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근처에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동료 학생인 이종창씨가 일으켜 세우고 있다. 당시 로이터 통신 한국 특파원이었던 정태원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지은이
김창길

저자인 경향신문 사진부 김창길 기자

사회학을 전공했다. 사진은 대학 교양 선택수업을 통해 배웠다. 수강 직후 운 좋게 실전에 써먹을 기회가 생겼다. 작은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사진을 찍었다. 간단한 기사들도 썼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당시 유행이던 해외 배낭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졸업을 앞두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직종이었다.
2003년 사진기자가 됐다. 사진기자는 1년에 한 번쯤은 큰 사건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그 기회를 잘 포착하면 한국 보도사진 역사에 자기 사진 한 장을 남기게 된다. 선택된 한 장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낙종인 것이다. 2011년 11월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한 국회의원이 본회의장 의장석에 최루탄 가루를 살포했다.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최루탄 살포 장면을 포착했다. <국회묵시록>이라는 제목을 단 사진은 제48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사진 칼럼 <김창길의 사진공책>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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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악은 평범한 모습이다. 폭정을 멈추게 할 방법은 그 평범함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이었다. 계엄군이었던 탱크 조종사도 한 사내의 평범한 생명을 생각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큰 능력도, 그다지 큰일도 아니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저항의 출발점이다. 결과는 대단했다. 그 사소한 행동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저항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평범함을 벗어난 작은 영웅의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_1.1. “탱크맨과 람보” 중에서

텍사스에 몰아 닥친 먼지 폭풍. 러셀 리, 1936

문자는 사후에 기록된다. 사진은 그 순간을 그 순간에 포착한다. 1936년, 도로시아 랭은 대공황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사진 한 장을 남겨놓았다. 캘리포니아 이주민 농장 천막 아래서 먼 곳을 응시하는 ‘이주민 어머니(Migrant Mother)’ 사진이다.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에서, “개암 빛깔의 눈은 온갖 고생을 다 겪고, 계단을 오르듯 고통을 극복해서 대단히 차분하고 초인간적인 이해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그것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가족의 요새이며 그 요새는 결코 점령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이라고 썼다.
도로시아 랭이 찍은 이름 모를 ‘이주민 어머니’는 3년 후,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출현했다. 어머니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도로시아 랭의 피사체는 그저 ‘이주민’의 어머니로 이름표를 달았고, 『분노의 포도』에는 ‘톰 조드’의 어머니로만 적혀 있다. 하지만 이 이름 없는 어머니들은 고단한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든 가족의 버팀목이었다. _1.2. “끝내 찍히지 못한 꿈 ‘아메리칸 드림’ 중에서

이주민 어머니. 도로시아 랭 .1936

“앞날이 걱정된다고 했소? 난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내오.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소. 중요한 건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뿐이오.”
앞날에 대한 걱정, 어제 일에 대한 후회, 조바심. 이런 마음들이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삶의 원인이 아닐까? 사라질 것에 집착하여 간직하고 쌓아두고 안전가옥에 숨어 지내는 것, 이것이 바로 42살 중년의 월터의 삶이었다. 언제까지 멋진 삶을 상상하며 껍데기 속에 갇혀 있을 것인가? 일단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오라고 사진작가 숀이 월터에서 손짓한다. 일단 문밖으로 뛰쳐나오라고! _1.3.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에서

내 기억 속의 판문점은 중학생 때 들었던 한 팝송에서 시작한다. 「어니스티(Honesty)」처럼 감미로운 노래만 부르는 줄 알았던 가수 빌리 조엘(Billy Joel)이 부른 노래로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래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생의 형편없던 영어 실력에도 노래 가사에는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Joe McCarthy, Richard Nixon,
Studebaker, television
North Korea, South Korea, Marilyn Monroe
Rosenbergs, H-bomb,
Sugar Ray, Panmunjom
Brando, “The King and I”
and “The Catcher in the Rye”
1989년 <스톰 프론트(Storm Front)>라는 싱글 음반으로 발매된 「우린 불을 지르지 않았어(We didn’t start the fire)」가 바로 그 노래다. 가사는 가수가 태어난 1940년대에서 시작해 1980년대까지 일어났던 세계적인 사건 사고와 관련된 단어들을 나열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어들은 노래 초반에 흘러 나왔다.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라는 단어는 텔레비전과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 사이에 박혀 있었다. 텔레비전이 유행하고, ‘백치미의 여왕’ 메릴린 먼로가 세계를 들썩이게 할 무렵에 한국전쟁은 발발했다. 한국의 남북전쟁! _1.4. “판문점, 우리는 불을 지르지 않았다”에서.

주한 미군 위문공연하는 마릴린 먼로. 1954. 퍼블릭 도메인

1950년대를 풍미했던 두 여성배우의 이미지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복고풍이라는 유행의 전략으로 환생한 것은 아니다. 시대의 욕망에 맞춤하는 요소들이 선택돼 변형됐다.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에서 육감적인 몸이, 오드리 헵번에게서는 천상 소녀 같은 얼굴이 선택됐다. 그리고 하나로 합쳐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속칭 ‘베이글녀’다.
상반된 이미지를 한몸에 간직한 ‘베이글녀’가 디지털 매체에서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타협 불가능해 보이는 ‘청순함’과 ‘섹시함’은 어떻게 하나로 뒤섞일 수 있을까? 일단 두 이미지를 하나씩 따로 떠올려보며 생각해봤다.
……

‘베이글녀’의 이미지는 메릴린 먼로처럼 섹시한 여성을 바라보게끔 만드는 시선의 전략이 숨어 있다. ‘베이글녀’의 몸은 디지털 미디어 기사들의 제목처럼 확실히 아찔한 느낌이다. 풍만한 가슴과 탄탄한 엉덩이를 태연하게 구경하기에는 어색하다. 이렇게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것에 주저하는 남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베이글녀’의 앳된 얼굴이다. 자신의 몸에서 시선을 떼어내려는 남성들에게 ‘베이글녀’의 얼굴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고개 들어봐요. 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니까요.” 남성의 시선은 위아래로 이동한다. ‘베이글녀’의 몸을 보며 쿵쾅대는 심장을 소녀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진정시킨다. ‘베이글녀’를 구경하는 시선의 이동은 그렇게 반복된다.
‘베이글녀’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사유 방식을 엿보며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을 뿐이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했다. 그가 알아냈던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_1.5. “합성된 베이글, 메릴린 햅번”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컷

옥자의 눈은 왜 사람의 눈일까? 옥자는 주인공 소녀 미자(안서현 역)가 바라본 옥자인데, 미자에게 옥자는 가축이 아니다. 할아버지(변희봉 역) 눈에는 가축이겠지만. 옥자는 미자와 함께 유아기를 보낸 친구이자 가족이다. 단순히 유아기를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옥자와 미자가 사는 공간은 첩첩산골이다. 먹거리는 닭 몇 마리를 기르며 수렵 및 채집을 통해 조달한다.(옥자는 사냥개처럼 수렵 활동을 돕는다.) 옥자와 미자는 자본주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의 스틸컷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옥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소농계급의 시각을 갖고 있다. 앞의 글 「사파리, 사진이라는 트로피」에 인용했던 존 버거의 가족 이야기를 다시 상기해보자.
“어떤 농부는 자신의 돼지를 아주 좋아하게 되고, 그리고 그는 그것의 고기를 기꺼이 소금에 절여버린다. 이 문장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진술이 ‘그러나’가 아니라 ‘그리고’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옥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옥자는 분명 현대 사회의 애완동물이 아니다. 옥자는 결국 삼겹살, 목살, 등심, 앞다리살 등으로 해체될 존재였던 것이다. 본래 그러한 존재인 가축에 대한 농부의 사랑은 현대인의 감수성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접속사 ‘그러나’와 ‘그리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 존 버거는 “가축은 지배의 대상이면서 숭배의 대상이고, 길러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면서’, ‘이고’, ‘동시에’로 연결되는 존재이지 ‘그러나’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농부의 가축인 것이다. _1.7. “옥자의 눈은 사람 눈”에서

 

 

 

 

 

 

 

 

 

 

Posted by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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