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 품고 사는 꽃 배달 할아버지들
이번 남대문시장 상인들 취재를 하면서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인 곳은 꽃도매상가였다. 일주일의 취재 기간 동안 3일을 찾아갔다. 이유는 꽃 배달 노인들 때문이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때로는 도보로 배달을 나가시는 분들이라 상가를 비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수시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흔을 넘긴 박창규씨가 남대문시장 대도꽃도매상가에서 꽃인 든 종이상자를 나르고 있다.
남대문시장 꽃도매상가에는 70여 개의 점포가 있다. 꽃시장에는 매주 화, 목, 일요일 저녁에 싱싱한 꽃들이 들어온다. 원예농가에서 화물차로 싣고 온 꽃들은 각 점포 상인들이 주문한 양만큼 매장 앞까지 옮겨진다.
박창규씨(73)씨는 이 꽃을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로 21년째다. 박씨가 하는 일은 또 있다. 꽃 배달이다. 상가를 찾은 소매상들은 구입한 꽃이 양이 많을 때 박씨와 꽃 배달 노인들에게 배달을 맡긴다. 박씨는 이 배달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꽃도매상가가 박씨의 일터지만 점포는 따로 없다. 박씨를 비롯한 9명이 꽃도매상가에서 꽃 배달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시내 꽃가게로 배달을 한다. 박씨는 125CC 오토바이로 꽃 배달을 한다. 수입은 그날그날 다르다. 배달일이 많으면 많이 벌고 적으면 적게 번다. 다행히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단골가게가 많아 쉴 틈이 없다. 꽃 배달 일을 하기 전에는 화장품 외판원으로 20년 간 일했다. 박씨는 지금의 일이 더 만족스럽다. “궂은일이지만 남을 속이지 않는 일이라 마음만은 편안하고 떳떳합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박창규씨가 꽃도매상가 매장에서 배달할 꽃을 넘겨 받아 어깨에 메고 있다.
박창규씨가 꽃이 든 상자를 끈으로 묶고 있다.
박창규씨가 배달할 꽃을 오토바이에 싣고 목적지로 출발하고 있다.
이영복씨(71)는 일용직 노동을 하다가 꽃 배달 일을 시작했다. 올해로 30년째다. 이씨는 오토바이가 없다. 대신 자전거로 꽃을 배달한다.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동료들에 비해 일거리가 적다. 대신 가까운 거리 배달은 모두 이씨 몫이다. 이씨는 꽃도매상가에서 ‘맥가이버’로 통한다. 합판을 톱으로 잘라 바퀴를 달면 무거운 물통을 나를 때 사용하는 손수레가 된다. 고장 나고 부서진 물건도 이씨의 손을 거치면 쓸 만한 것으로 재탄생 된다. 이씨의 연장통은 작은 철물상이다. 못과 망치, 톱, 공구세트 등 웬만한 것들은 다 들어 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꽃을 파는 매장의 상인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 일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이영복씨가 꽃배달 상자를 자전거 짐칸에 싣고 있다.
이영복씨가 자전거를 이용해 꽃배달을 가고 있다.
이영복씨가 배달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꽃시장 점포에서 사용할 손수레를 만들고 있다.
꽃배달 경력 30년째인 이영복씨의 투박한 손.
강성율씨(67)는 꽃 배달 동료들 중에서 젊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가장 무거운 물건은 항상 강씨가 자진해서 나른다. 먹고살 만큼 돈도 벌어 놨지만 강씨는 단 하루도 일을 빠진 적이 없다. 하지만 강씨도 이제는 무거운 상가를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힘에 부친다. 꽃이 든 무거운 상자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강씨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비오고 눈 오는 날이 가장 힘듭니다. 입학과 졸업시즌때는 배달할 사람이 없어서 쩔쩔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며칠을 못 참고 금세 그만두고 맙니다. 폼 나는 일은 아니지만 부지런히만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강성율씨가 배달할 꽃을 꽃시장 점포에서 받아 오고 있다.
강성율씨가 배달한 꽃상자를 묶고 있다.
강성율씨가 배달할 무거운 꽃상자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번듯한 점포도, 마음 편히 쉴만한 마땅한 공간도 없다. 하지만 꽃 배달 노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소중한 일터가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향기를 이고다니는 노인들의 몸에서 향긋한 꽃냄새가 풍겨 나왔다.
<남대문시장 상인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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