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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작업중(作業中)

남대문시장 상인들 <06>

50년째 지하로 출근하는 수입지하상가의 터줏대감 

 

전북 남원에서 중학교를 간신히 다니던 열여섯 살 소년은 집안 살림 때문에 앞이 막막했다. 소년은 7남매의 맏이었다. 어려워진 가계를 일으켜보기 위해 맨주먹으로 서울로 올라왔다. 남대문시장 좌판에서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월급을 모아 고향으로 내려 보냈다.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마치고는 조그마한 그릇가게를 차렸다. 모아둔 돈은 없었지만 작은 빚을 내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장사가 올해로 53년째다. 앳된 소년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지하수입상가에서 수입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신은철씨(70) 얘기다.

 

신은철씨는 지하수입상가 50년 역사의 산증인이다.

 

 없는 게 없다는 남대문시장에서 지하수입상가는 수입 물품을 취급한다. 의류, 가방 등 잡화부터 그릇, 주방용품, 먹거리 등 품목도 다양하다. 80년대 초 수입자유화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외제물품은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지하수입상가에서는 진귀한 외국 물품들을 은밀하게 거래했다. 대부분 미군부대나 외국에서 배로 몰래 들여온 물건들이었다. 같은 물건이라도 아침, 점심, 저녁에 따라 물건 가격이 달랐다. 관세청 단속반원이 얼씬거리기만 하면 떴다하는 비명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에 물건을 감추었다고 해서 일명 도깨비시장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정식으로 수입한 물건들을 판매한다. 지하수입상가는 C, D, E동의 지하가 이어져 있어 남대문시장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지하수입상가에는 1,00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좁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진열된 다다사의 상품들.

 

손님이 주문하는 물풀을 적고 있는 신은철씨.

 

 신씨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불법 노점상들이 많았다. 그런데 1968년 시장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후 1년 뒤에 지금의 C, D, E 동이 새로 지어졌다. 그 후 노점상들은 새로 지은 건물지하로 내몰리듯 쫓겨가야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손님들이 지하로는 잘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하로 밀려난 상인들은 손님을 찾아 1층 노점으로 다시 올라가야했다. “내려 보내면 올라오고 내려 보내면 또 올라오고... 그 당시만 해도 지하로 내려가면 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창고로만 사용하던 텅 빈 공간이었으니까요.”

 

신은철씨가 물품창고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매장에 다 진열할 수 없는 물품들은 대부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 여름 많이 팔았던 휴대용 미니선풍기를 창고에서 꺼내보이는 신은철씨. (어느 쪽을 가지실래요?....왼쪽 하얀색을 나에게 선물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수입품을 싸게 판다는 입소문이 전해지면서 지하상가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 이후 지하상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수입상품의 도소매 유통이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외제물건이면 환장하던 때인 80년대 초반부터 2천 년대 초반까지가 피크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산제품의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거든요신씨는 87년 무렵 가게 이름을 정해서 매장 앞에 내걸었다. 처음에는 물건이 많다는 뜻으로 많을 자 세 개를 합쳐서 다다다(多多多)’로 정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놀리는 바람에 다시 다다사로 바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좁은 점포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물품 진열이 눈에 띄었다.

 

 

 

진열대에 상품 가격표가 붙어 있다.

 

신씨의 외아들 동헌씨(왼쪽)가 직장이 쉬는 토요일에 나와 일을 돕고 있다.

 

 신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가게를 지킨다. 꼬박 12시간을 지하 매장에서 보내는 셈이다. “지금은 자녀들이 물려받은 경우도 더러 있지만 지하상가상당수의 분들이 처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상인들입니다처음 한 칸으로 시작한 신씨의 매장은 지금은 두 칸으로 늘었다. 부인과 막냇동생이 가게를 함께 지키고 있다. 외아들 동헌씨(42)씨도 직장이 쉬는 토요일에 나와 가게 일을 돕는다. “온가족이 가게에 매달려 있지만 인터넷 쇼핑몰에 손님을 빼앗기는 바람에 경기가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마치 부동산중개소를 그치지 않고도 집을 사고 팔수 있는 것이나 매 한가지인 셈입니다

 

 

일흔의 나이에도 활기차게 일터를 지키는 신씨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후 50년을 넘게 장사를 해온 신씨에게 좋은 시절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죽기 살기로 일만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틈틈이 등산도 다니고 운동도 하니 사람답게 사는 것 같거든요언제까지 장사를 할 생각인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한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장사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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