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오그라드는 모양이다. 교회 첨탑에 머물 시간도 없이 해가 뚝 떨어지는 세밑. 숨 고를 틈도 없었는데 벌써 한 해의 꼬리를 밟고 서 있다. 세월은 결코 헐겁지 않다.
저물어가는 바다가 보고싶어 제주 한경 앞바다를 찾았다. 여린 겨울 햇살 아래 한치만 널려있는 부둣가. 뼈저리도록 찬 바람과 서슬 퍼런 바다를 가르고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떠났다. 아무리 바람이 거칠고 바다가 시려도 생활만큼 뼛속을 파고들기야 하겠는가. 저녁놀은 꼭 이렇게 바람이 모진 날 붉고 애잔하다. 햇덩이를 삼킨 바다에 잠시 따스한 기운이 맴돌았다. 잠시나마 훈훈한 붉은 바다에 어둠이 짙게 퍼져간다.
그러고보니 올해도 차귀도를 물들였던 햇덩이처럼 수평선에 걸려있다. 남은 날들이 노루꼬리만큼이나 짧다. 장엄하게 하루를 지우는 저녁놀때문인가?. 겨울 바다는 여름 바다보다 더 아름답다. (글 최병준 -경향신문 매거진 엑스 여행담당기자)
(제주 한경앞바다,린호프카메라 58mm, f32, 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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