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령의 밤풍경,린호프612카메라, 58mm렌즈, 조리개5.6, 노출시간 5분, ISO400필름)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5백만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 속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으로 부리를 벼리러 스비스조드로 날아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잠든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던 같기도 하다. 별은 그렇게 어느 봄날 바람꽃처럼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 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의 마지막 구절.
결국 그날 밤, 저는 은비령을 찾고야 말았습니다.
이순원씨가 소설속에서 소개한대로 한계령을 넘어 현리 방향으로 가는 작은 고개를 넘어가니
정말로 그곳에 은비령이 있었습니다.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며칠전에 내린 눈으로 은비령의 고갯길은 살짝 눈으로 덮혀
있습니다. 필례약수를 품고 있는 계곡에는 아담한 펜션이 한가하게 저를 맞아줍니다.
은비령 고갯길 바위에 오르니 숨어있던 은비령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등성이 넘어온 겨울 바람은 매서운 꼬리를 달지는 않았습니다.
어둠이 은비령을 감싸기를 기다려 봅니다.
보름이 엊그제라 평소보다 별이 많지는 않지만,
산등성이 품은 겨울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무리지어 산책을 나옵니다.
밤하늘, 잔잔한 구름띠 사이로 보이는 별이라 더 애잔합니다.
소설속 "은비령" 과 아름다운 밤하늘.
애달픈 별들만이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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