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입니다. 친할머니께서는 소주를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하루라도 소주를 드시지 않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밥을 굶어도 소주를 굶지는 않으셨습니다. 투명한 병에 들어있는 무색의 액체를 왜 그리도 좋아라 하셨는지...숨겨 놓고 혼자드시기에 할머니 몰래 홀짝 마셔보기도 했습니다. 무척이나 독하고 맛이 없더군요. 하지만 할머니는 물에 밥말아 먹듯이 소주에 밥이라도 말아드실 정도로 소주에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때는 할머니가 소주를 왜 그렇게도 즐겨드시는지 몰랐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할머니의 술에 대한 애착을 조금이나마 알것도 같습니다. 저 역시 많이는 못 마시지만 할머니가 드시던 십분의 일 정도는 마시고 있으니 말입니다. 독한 것을 마시면 기분도 좋아진다는 것을 어릴적엔 알지 못했습니다.(중략)
소주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위해 차 트렁크에 소주 2박스를 싣고 2년 전 충주의 한 시골 마을을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사실 저는 밭고랑에서 자연스럽게 소주를 드시는 촌로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시골을 찾았었습니다. 밭에서 김을 매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밭고랑에서 일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사진 찍는 것을 쉽게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소주의 이미지와 주름살 많은 촌로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사진 찍을 일이 많지 않았던 할아버지께서는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척이나 긴장을 하셨습니다. 아무리해도 자연스런 표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난감해하던 차에 옆에서 물끄러미 이광경을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 마지못해 소줏잔을 들고 할아버지를 훈수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광경이 더 재미있더군요. 한순간의 동작이었는데 그렇게 자연스러울수 없었습니다. 선이 굵은 주름과 붉게 탄 얼굴 그리고 한 칸이 비어있는 틀니 사이에서는 가공할만한 웃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공을 들여 사진을 찍었던 할아버지는 소주 2박스를 차지하시고 기뻐하셨고, 옆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기뻐하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시고, 사진을 찍던 저는 덩달아 신이 나서 웃고, 이렇게해서 한가로운 시골 밭고랑 사이로 천진난만한 세 웃음이 한동안 흘러 내렸습니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 이사진 신문에 나가면 도회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절대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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