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서리 인생 30년, 희망을 디자인하는 부자(父子)
남대문시장에는 유난히 액세서리 가게가 많다. 4천여 개가 넘는다. 40여개 상가 중 절반 정도가 액세서리 점포다. 왜 이렇게 액세서리 점포가 많을까. 남대문시장 액세서리가 품질이 좋아 상인들이 한 곳에 모이는 이유도 있지만 소규모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채 1평도 되지 않는 점포가 벌집처럼 서로 붙어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점포를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 입장에서도 액세서리만한 품목이 없다.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점포는 전성기였던 90년대부터 2천 년대 초반까지 우후죽순 늘어났다.
장사 30년째인 남대문시장 장안 액세서리 상가 심재립씨.
심재립씨와 큰아들 민철씨.
심재립씨(58)는 장안액세서리 상가의 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다. 30년째 액세서리 가게를 하고 있는 심씨는 상인회 회장직만 16년째 맡고 있다. “결혼해서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액세서리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집에서 만든 액세서리 보따리를 들고 옛 도쿄호텔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당시 남대문시장 야경이 눈부실 정도로 휘황찬란했습니다. 아, 여기서 액세서리로 한번 젊음을 불태워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씨는 30년 전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액세서리 매장으로 밀집한 장안 엑세서리 상가 1층
외국인 손님을 맞고 있는 심재립씨.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심재립씨.
상인들은 매장에서 액세서리를 직접 제작해서 판매한다.
액세서리 제품은 디자인부터 제작, 판매까지 대부분 좁은 점포에서 이뤄진다. “새벽 5시에 나와서 오후 6시까지 일합니다. 낮에는 가게에서 판매를 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못다 만든 제품을 만드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액세서리는 디자인에 민감한 제품이라 소량으로만 생산한다. 시장 반응에 따라 생산을 늘리거나 줄이기도 한다. 일본, 중동,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6:4 비율이다. “한때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액세서리 시장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시장에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많아 전망이 어둡지 않습니다” 심씨는 경기회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밀집한 액세서리 가게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다. 점포가 한 곳에 모여 있어 상사를 찾은 손님들은 다양한 제품을 구경할 수는 장점이 있다. 반면 디자인을 서로 모방한 비슷한 제품들이 많아 점포끼리 다툼의 소지도 있다. “그래서 서로 인접한 가게에서는 동일한 디자인의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상인회에서 나름 규칙을 정해 놓았습니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일종의 ‘불문율’인 셈입니다”
악세사리와 엑세서리. 철자법의 변천사를 통해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심씨의 큰아들 민철씨(30)는 군대를 제대하고부터 줄곧 액세서리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가게이름도 ‘민철사’다. 올해로 8년째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아버지가 액세서리 만드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액세서리 일에 뛰어 들게 되었습니다” 민철씨는 새벽 7시에 출근해 폐점을 하는 오후 5시까지 1평 남짓한 공간을 떠나지 못한다. 아침과 점심은 인근 식당에서 배달해서 먹는다. 한곳을 종일 지켜야하는 일이라 지겹지는 않을까. “점심 먹고 손님이 없을 때는 쏟아지는 잠을 참느라 애를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님들이 많을 때는 화장실 갈 겨를도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부담이기는 하지만 다행히 군 제대 후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밤새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새벽 6시만 되면 칼같이 눈이 떠집니다” 민철씨는 9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매장에서 배달된 점심을 먹고 있는 민철씨.
민철씨가 앉아 있는 의자 옆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식당 스티커. 민철씨는 아침과 점심을 매장에서 해결한다.
가게를 닫고 있는 민철씨.
상가 입구에 나란히 붙어 있는 ‘민철사’와 ‘셀렉트’는 심씨 부자가 운영하는 가게다. 두 개의 점포에는 수만 개가 넘는 액세서리 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품목이 너무 많아 가격을 어떻게 외우고 있을지 궁금했다. “사실 품목이 너무 많아 가격을 다 외우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가격이 적힌 제품 사진을 휴대폰에 늘 보관해놓고 있어요. 저장된 사진만 4천장이 넘습니다” 간혹 값비싸 보이는 제품에는 모호한 숫자가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 가격을 표시한 것이 분명한데도 해독이 불가능했다. “난수표처럼 표시된 숫자에는 나름 암호가 숨겨져 있습니다. 가르쳐 들릴 수는 없습니다. 저와 아빠만 아는 비밀입니다. 흐흐흐”
숫자가 적힌 고가의 엑세서리 제품들. 가격을 의미하는 이 숫자들의 비밀은?
희망을 디자인 하는 엑세서리 부자(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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