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을 장만할 때 에어컨은 유독 신경이 많이 쓰인다. 가격도 비싸지만 제품불량과 설치와 관련된 분쟁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본체와 달리 실외기는 안전한 설치장소와 미관상의 요건 등 소비자가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많다. 제조사도 많기 때문에 적당한 제품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아래의 글은 새로 구입한 에어컨과 관련해 최근 겪은 다소 황당한 일이다.
■17년 만에 바꾼 에어컨
새로 이사 간 집에 에어컨을 구입해 설치한 것은 올 2월이었다. 신혼 때부터 사용해오던 벽걸이 에어컨을 스탠드 형으로 교체했다. 17년 만에 구입하는 에어컨이었다. 지난여름의 에어컨 설치 대란이 생각나서 서둘렀다. 구입한 제품은 삼성전자의 스마트 에어컨인 Q9000이었다. 절전형인데다 디자인까지 깔끔했다. 겨울이라 결재부터 설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설치후 작동 테스트까지 마쳤지만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본격적인 더위에 앞서 보험을 들어 놓은 듯 마음이 든든했다. 하지만 새로 장만한 에어컨이 나중에 말썽을 일으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7년만에 새로 장만한 삼성 스마트 에어컨 Q9000 제품.
■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새 에어컨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지난 7월 1일 에어컨을 처음으로 가동했다. 전원을 켠지 30분이 지났지만 미지근한 바람만 나왔다. 찬바람이 나올 기색이 없었다. 새제품이라 고장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어컨 작동 원리조차 모르는 나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 A/S를 신청했다. 사흘 후인 7월 4일 A/S센터 직원이 방문했다. 센터 직원은 냉매가스를 확인하더니 정상치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설치 때 완충했던 냉매가스가 그동안 새버렸다는 것이다. 냉매가스를 다시 완충하니 에어컨에서 찬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 제품에는 문제가 없는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서비스센터 직원은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서비스를 받는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또 찬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제품에 문제가 없다면 아무래도 설치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설치를 담당했던 업체에 전화를 했다. 7월8일, 설치 업체 직원이 집을 찾았다. 직원은 본체와 실외기 용접 부위에 이상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비누거품 테스트까지 마친 직원은 설치에는 이상이 없다고 확인해주었다. 직원은 냉매가스만 완충해주고 돌아갔다.
본체와 매립배관를 연결한 부분에 냉매가스가 새는지 비누거품 테스트를 해 보았다. 전혀 이상이 없었다.
본체도 분해해서 살펴보았지만 이상이 없었다.
매립배관과 실외기를 연결한 용접 부위를 점검해 보았지만 이곳도 이상이 없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서 냉매가스가 새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한 달 동안 3번이나 방문한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제품에 이상이 없다고 얘기하고, 설치 업체는 용접부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에어컨 냉매가스는 보충한지 닷새정도만 지나면 새는 일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일이 점점 꼬이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매립배관이었다. 매립배관에서 가스가 샌다면 마루를 뜯어내는 큰 공사를 각오해야했다. 대안은 매립배관을 포기하고 에어컨 실외기를 베란다쪽으로 새로 설치하는 것이다. 물론 그 비용도 추가로 감당해야한다. 설치업체쪽에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매립배관을 손보는 것보다 실외기를 베란다쪽으로 옮기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분명 에어컨 냉매가스는 육안으로도 새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달 사이에 냉매가스만 5번 보충했다
하지만 끝까지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비용이 들더라도 마지막으로 제조업체도 설치 업체도 아닌 제 3자에게 의뢰해 보고 싶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추천해준 에어컨 설치 및 유지보수 업체에 연락을 했다. 7월24일 에어컨 설치와 고장 수리에 나름 일가견이 있다는 업체 대표가 집을 찾았다. 나는 그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고 업체 대표는 반나절에 걸쳐 순차적으로 점검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매립배관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반가운 소리였다. 혹시 제품에는 문제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소비자가 직접 제품의 문제점을 찾아내기 전에 제조사가 먼저 불량을 인정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돈을 들여서라도 문제점을 내가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얘기였다. “설령 제품불량을 찾아내더라도 교환만 해주지 보상은 어림도 없습니다.” 그날 방문한 수리업체 대표도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다음날 다시 오겠다며 냉매가스만 채워주고 돌아갔다. 한 달 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냉매가스를 보충해야할 정도로 문제가 있었지만 원인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실외기 내부 바닥에 고여 있는 기름 발견. 공장에서 출고 되면 안되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기름 고인 실외기 내부모습. 실외기 내부를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삼성전자는 끝까지 제품에 이상없다고 우겼을 것이 분명하다.
■제품불량 인정한 삼성전자
장마가 끝나자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다. 돈을 들여 에어컨을 사놓고도 사용하지 못하니 안타까웠다. 가족들의 성화에 에어컨 실외기를 베란다쪽으로 다시 설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지난 8월 6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어컨 수리 업체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점검을 요청했다. 그것조차 안 되면 베란다쪽으로 재설치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집을 찾았다. 실외기쪽에서 점검을 하고 있던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는 에어컨 실외기 뚜껑을 열어 놓은 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원인의 근원지를 찾아낸 것이었다. “기름이 잔뜩 고여 있는 실외기 내부 바닥 쪽을 한 번 보세요. 내부에 기름이 고이는 현상은 정상이 아닙니다. 모든 원인은 결국 실외기 내부 배관 불량 때문이었습니다.” “어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 전화하세요.” 전화를 한지 4시간 만에 삼성A/S 팀장이 직접 집을 찾아왔다. A/S 팀장은 기름이 고여 있는 실외기를 보고서는 말문이 막힌 듯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제가 에어컨 일을 해온지 30년째입니다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실외기 불량입니다. 이런 불량 실외기는 결코 출고되어서는 안 되는 제품입니다. 책임지고 교환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나와 가족을 괴롭혔던 에어컨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세 번에 걸친 A/S방문 때마다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던 삼성에서 명백한 증거 앞에서 결국 백기를 들고 제품불량을 인정했다.
한달 넘게 나를 괴롭힌 삼성 에어컨. 결국 반품 신청을 했고 9일 삼성전자 직원들이 거실에 있는 에어컨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죽도록 고생한 올 여름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서비스센터에서는 제품불량을 인정하고 새제품으로 교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당장은 재고가 없어 당분간은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 언제 되는지 물어보았다. 이번 여름에는 공장출고 계획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참 어이가 없었다. 제조사에 명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름에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가족들과 의논한 후 반품을 결정했다. 삼성 측에서는 반품 및 설치비용까지 모두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9일 오전 삼성전자 직원들이 집에 있던 에어컨을 모두 철거해갔다.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에어컨이 놓여 있던 자리가 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불량 에어컨과의 사투는 끝이 났다. 하지만 폭염에 맞서야 할 여분의 여름은 아직 남아 있다.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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