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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지리산 둘레길

<1일차>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물었다.

지리산 둘레길-1일차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지리산을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히말라야를 세 번째로 가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뜻대로 되지 않았는게 내 인생이다. 지난해 회사에서 받아 놓은 보름 휴가를 9월에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치도 못한 하나의 결정 때문에 휴가를 앞당겨야 했다. 지금 히말라야는 우기다. 보름 내내 비만 맞다가 올 판이었다. 급하게 딴 곳을 고민하다 지리산으로 정했다. 여름 초입에 웬 지리산? 주위에서는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특별히 뜻한 바는 없다. 그냥 좀 걷어싶어서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열흘쯤 걸어볼 생각이다. 이왕 작정하고 고생하러 나선 길.

 

 

미니 삼각대 셀카

 

지리산길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와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22개 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사실 아무 구간에서나 시작해도 된다. 하지만 굳이 1구간부터 가보고 싶었다. 1구간 시작 지점은 남원 주천이다. 아침 840분 용산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고 남원으로 내려왔다. 남원역에서 주천까지는 버스로 가야했다. 하지만 시골버스는 서울버스와는 다르다. 자주 오지 않는다. KTX2시간 도착했는데 버스 기다리느라 1시간을 소비했다. 출발 지점인 주천 읍내에는 12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주천행 버스

 

 1구간인 주천~운봉은 안내도에는 14.3km, 6시간 거리라고 나와 있었다갈 수 있는데 까지만 가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다행이 서울처럼 비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리산 쪽으로 다가 갈수록 먹구름이 몰려왔다출발한 지 30분 만에 배가 고파 왔다. 읍내에서 사온 김밥 2줄을 정자에 앉아 먹고 있었다. 지나가던 마을 노인분이 옆에 앉아 묻는다. 어디 가는 길이냐고. 둘레길 걷는다고 했더니. 이 더운 여름에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하신다.....

 

 

시작지점

 

 

 

 

첫끼니 김밥

 

 

1구간 안내서에는 분명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라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쉬울 줄 알았다하지만 웬걸. 땀을 한바가지 이상 흘렸다. 2시간째 오르막길이었다등산 스틱을 안 가져왔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고개를 두 번이나 넘었다. 첫 번째 고개 중턱에서 잠깐 쉬었다쉬고 있는 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올해 처음 듣는 매미울음이다. 여름이 시작되긴 했나보다

 

 

 

 

 

 

 

 

 

 

가는 길 곳곳에 꽃도 많고 열매도 많았다.

 

3시간을 걸어서 마지막 고개를 넘었다. 길이 순탄해졌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마을이 보인다. 회덕마을이었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났다. 논두렁에 쉬다가 또 마을이 나오면 정자에 앉아 쉬었다. 급할 거는 없었지만 해가 저물기 전에 숙소를 찾아야했다. 다시 3시간을 걸어서 1구간 종착점인 운봉에 도착했다. 오후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먹구름이 짙어지더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읍내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를 알아봤더니 마땅치가 않았다. 여관방에 자고 싶지는 않았다. 둘레길 책자에 소개된 민박집에 전화를 했더니 이미 지나쳐온 마을이었다. 30분을 되돌아 가야했다. 고맙게도 민박집 사장님께서 트럭을 몰고 읍내까지 데리러 오셨다.

 

 

 

 

 

느티나무아래 목침

 

 

 

 

이곳도 가뭄이 심했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저물었다. 민박집 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이하며 방을 보여주셨다. 방이 5개나 되는데 아무 곳이나 사용해도 된단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많았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고 하신다. 샤워를 하고 나니 스르르 몸이 풀리면서 졸음이 찾아온다. 잠결에 쓴 글이라 두서도 없고 길어졌다....

 

 

운봉 장수민박 박점선 할머니께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벌레 때문에 씌어 놓았던 양파망을 벗겨 예쁜 장미꽃을 보여주셨다.

 

지리산 둘레길은 이맘 때가  '프레지턴트 둘레길'인 것 같다. 대접받으며 제대로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