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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작업중(作業中)

나와 스튜디오

토요 당직을 하는데 갑자기 사진기자 동기의 SOS, 계간 사진기자협회보 원고가 펑크났으니 대신좀 쓰달라며...
나는 5년 동안 경향신문 매거진엑스에서 일했던 스튜디오 사진 경험을 바탕으로 원고를 급하게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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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에게 보낸 원고 초고중에서>

 

     <나와 스튜디오>

                      -경향신문 정지윤-


나에게 스튜디오는 새로운 빛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기자 세계에서 소위 말하는 아스팔트 출입처가 나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으로 인해서 매너리즘에 빠져들 무렵 스튜디오는 구세주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2001년 12월 17일.
나는 6년 동안의 아스팔트 생활을 접고 회사 5층에 있는 스튜디오로 출입처를 옮겨야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매일 발행되던 ‘매거진엑스’라는 막강한 섹션을 발행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1년가량만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왕성한 5년을 보냈다.


출판 사진기자가 아닌 스트레이트 사진기자에게 스튜디오는 두렵고 생소한 공간인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마찬 가지였다. 한번도 다뤄본 적도 없는 무수히 많은 조명 장비를 처음 접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을 지도 의문스러웠다.
처음 만져보는 새로운 기종의 카메라를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카메라는 차근차근 읽으면 알 수 있는 매뉴얼 책자라도 있지만 스튜디오는 도대체 그런 매뉴얼 북조차 없었다. 오로지 선배의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중앙일보 사진부에서 일하고 있는 권혁재 선배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당시 권선배는 경향신문 스튜디오의 터줏대감처럼 수년을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해왔던 터라 나에게는 절간의 큰 스님처럼 따르고 배워야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권선배가 일할 때 어시스트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조명 사용법을 익히고 밤에는 혼자 남아서 낮에 스승이 작업했던 것을 따라 해봤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조명이었다.
카메라에 장착하는 조그마한 스트로보에만 익숙한 나로서는 덩치 큰 메인조명과 텅스텐 조명 등 각양각색의 조명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 앞에 불가능은 없는 법.
한걸음 한걸음 어둠을 뚫고 정상을 향해 밤 산행을 하듯이 나의 스튜디오 생활은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떼고 낯선 자동차를 몰고 조금씩 전진해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스튜디오는 새로운 사진에 대한 도전이자 모험이었던 셈이다.

익숙지 않은 스튜디오 사진을 찍는 것이 매일 매일 스트레스이기는 했지만 차츰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지자 초보운전자가 겁 없이 차를 이곳저곳 몰고 다니듯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는 작업에 흥미롭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쉬는 날에도 회사 스튜디오에 나와서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며 조명을 똑같이 따라 해보기도 했다.
빛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지면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연예인들은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군인이 실제 전투에 투입된 것처럼 실전 경험을 차곡차곡 쌓게 해 주었다.
TV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유명 연예인들을 암흑 속에 놓아둔 채 나의 의도대로 조명을 줘가며 사진을 찍는 작업은 분명 식은땀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잊은 채 작업을 끝내고 나면 스스로의 환희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던 땀을 닦아 주었다.



나에게 있어서 스튜디오는 사진 찍는 작업 공간만은 아니었다.
일이 없을 때는 대학 때 즐겨가던 고전음악 감상실처럼 달콤한 휴식을 주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대형 스피커가 곳곳에 설치된 스튜디오는 혼자서 음악 감상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가수들이 음반을 낼 때마다 사진을 찍으러 빈번히 찾아왔기 때문에 스튜디오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반이 화수분처럼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스튜디오는 슬로 푸드처럼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떠올릴 수 있게 한 장소이기도 했다.
선배들이 스튜디오 자투리 공간에 만들어 놓은 흑백암실.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옛 기억을 떠올리며 흑백작업에 몇 시간씩 몰입하다보면 유명한 사진가라도 된 듯 혼자 뿌듯해했다. 그렇게 스튜디오는 나에게 삶의 또 다른 공간처럼 자연스럽게 지난 5년 동안 나의 일상을 새로운 빛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현재 일간지 신문사에 스튜디오가 있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경향신문 사진 스튜디오는 과거 MBC문화방송이 방송 스튜디오로 사용하던 공간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진 스튜디오에 비해 장점이 많다.
2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천정이 높아 답답하지 않고 방음시설이 뛰어나 아무리 오디오 볼룸을 높여도 밖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다. 또한 내부 조명을 모두 끄면 암흑의 세계가 될 정도로 완벽하게 외부의 빛을 차단하게끔 되어 있다.
그래서 사진 찍는 사람의 의도대로 섬세하게 빛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스튜디오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통보했을 때도 선배들이 앞장서서 이를 지켜냈던 자존심이 묻어있는 사진기자의 자랑스러운 공간인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지금 지난 5년 동안 생활의 일부가 되었던 스튜디오를 떠나와 또다시 아스팔트에 서있다.
사진 작업을 빛이라는 물감을 이용해 카메라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회화 작업에 비유한다면 나는 이제 크로키나 수채화정도 맛본 초보 화가에 불과하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숨 가쁜 사진기자의 현장에서 스튜디오 사진은 남의 일처럼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작업했던 지난 5년간의 스튜디오 작업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스트레이트 현장에서도 부지불식간에 나의 사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하게 된다.
아마도 그러한 나의 생각이 지난 5년에 대한 심리적 보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스팔트위에서 지금 내가 바라보는 빛은 예전에 내가 볼 수 있었던 빛의 계단에서 한걸음 도약했다는 것을 스스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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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CORPORATION] NIKON CORPORATION NIKON D3 (1/200)s iso200 F6.3
   당직인 토요일 15일 오후, 회사 스튜디오에서 급하게 셀프카메라로 혼자서 나를 찍어 보았다.




[NIKON CORPORATION] NIKON CORPORATION NIKON D3 (1/200)s iso200 F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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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원고 쓰고 스튜디오에서 혼자 셀프 사진 세팅하고 나를 찍느라 저녁이 너무 바뻤다. 훠우~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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