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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세상2007]“카~알 갈아요” 골목 누비는 낭랑 90살
이정성옹(90)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칼 가는 할아버지로 통한다. 할아버지에게 칼 가는 것은 일흔이 넘어서 새롭게 시작한 천직과도 같은 일.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훌쩍 넘었다. 30살 젊은 나이에 고향인 경북 예천 산골마을을 떠나 무작정 상경한 할아버지는 배추장사와 지게꾼으로 연명하다 6.25전쟁을 맞았다.
무딘 칼은 할아버지의 거친 손끝에서 춤을 춘다. |
전쟁이 끝나고 시작한 일은 부잣집에서 장작을 패주는 일. 하지만 그 돈벌이로는 어린 자식들을 키우기가 막막했다. 허드렛일을 해주러 들어간 작은 철근 공장. 다행히 할아버지의 부지런함을 눈여겨 본 공장장의 배려로 고철을 녹여 철근을 뽑아내는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세월의 주름이 오롯하게 새겨져 있다. |
뜨거운 쇳물 앞에서 매일같이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했지만 5남매를 키워야하는 생활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마에 세월의 흔적처럼 굵은 주름살이 새겨진 20년 전. 장성한 자식들이 차려준 칠순 잔칫상 앞에서 할아버지는 비로소 참았던 뜨거운 눈물을 마음껏 흘렸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땀방울은 칠순이 넘어서도 마를 날이 없었다. 극구 말리는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칼 가는 일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담뱃값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칼끝의 소리까지 들을 줄 아는 할아버지의 야무진 솜씨에 단골까지 생겼다. 아무리 잘 들던 집안의 부엌칼도 세월이 흐르면 칼날이 무뎌지게 마련이다.
할아버지는 느리고 더딘 숫돌만을 고집한다. |
그래서인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울리는 ‘칼 갈아요’ 라는 할아버지의 외침은 빈 골목길을 채워주는 반가운 손님이 되었다. “옛날에 인심이 물 흘러가듯 좋았을 때는 막걸리도 내주곤 했지. 그러면 덤으로 칼을 하나 더 갈아주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문전박대 안당하면 다행이지...” 할아버지가 칼 하나를 가는 데 드는 시간은 20여분. 손쉽고 빠른 그라인더 대신에 시간이 걸려도 숫돌에 칼을 가는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이다. “그라인더는 숫돌보다 못해. 말 못하는 무딘 칼도 정성을 알아보는 법이거든...” 한번 집을 나서면 해가 져서야 끝이 나는 한결같은 생활.
‘칼 갈아요’하는 할아버지의 외침이 잘 맞혀진 자명종 시계처럼 아파트의 아침을 열고 있다.(왼쪽) 할아버지가 한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통해 작업할 칼을 건네받고 있다.(가운데) 하루 일을 마친 할아버지가 연장이 들어있는 나무상자를 메고 기우는 어깻죽지로 집으로 향하고 있다. |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연장통을 어깨에 메고 하루 종일 골목길을 누비고 다닌다. 하지만 단 한번도 밖에서 점심을 사먹는 적이 없다. 점심 값이 아까워서다. “할멈한테 용돈이라도 주려면 점심은 어림도 없어. 환갑을 넘긴 큰아들이 아침마다 연장통을 숨겨 놓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데 아무도 못 말려..” 할아버지는 오늘도 멜빵끈 나무상자에 손때가 묻은 숫돌 두개와 물통 하나를 담고 한쪽으로 기우는 어깻죽지로 집을 나선다. ‘카~알 갈아요’
〈사진·글 정지윤기자〉
입력시간: 2007.11.11 17:46 | 기사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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