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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기사] [포토다큐] 부모님 情…고향이 기다린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111700241


[포토다큐] 부모님 情…고향이 기다린다

지리산을 등에 지고 있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상신흥마을. 잘 맞춰진 알람시계처럼 수탉이 홰를 치며 울어대자 마을 굴뚝마다 밥 짓는 연기가 하나 둘 피어올랐다.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든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편한 세상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나무를 땐다. 마을은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와는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배운 게 없어 평생 낫과 지게밖에는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김영호 할아버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땔감을 구하러 지게를 메고 산으로 다니신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마루에 앉아 넉넉한 웃음을 지으시는 할아버지 모습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섬진강 자락에서 가장 넓은 악양평야를 끼고 있는 까닭인지 이 마을은 ‘땅번지’라고 불린다.



어둠을 헤치고 제일 먼저 장대에 오르는 수탉은 고향을 깨우는 알람시계다. 아침을 깨운 수탉 무리가 제 일을 다 한 양 의기양양하게 논둑에 올라서 있다.
마을 노인들은 요즘 설 준비로 분주하다. 땅번지에서 5대째 살고 있는 김영호 할아버지는 아침을 들고마자



낫과 지게를 챙겨들고 땔 구하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여든을 넘긴 나이로 낫질에 버거워 보였지만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새색시처럼 수줍음이 많은 이다순 할머니. 눈가에 움푹 파인 주름살만큼이나 고달프게 살아온 삶이지만 할머니의 웃음은 늙지 않는 고향의 수줍은 마음을 닮아 있다.
설날 내려올 자식과 손자 생각에 ‘‘구들장에 등짝을 붙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장작이라도 넉넉하게 쌓아두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야 땔감을 지게에 짊어지고 햇살이 오글거리는 보리밭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 왔다. 골이 깊은 주름진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할아버지는 차곡차곡 쌓여가는 마당앞 장작더미를 보고 흐뭇해 하면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할아버지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이다순 할머니(74)도 설에 쓸 쌀을 키로 ‘까불고’ 있었다. 꽃무늬 ‘몸뻬’ 바지차림의 할머니는 칠 십 평생 몸에 익은 키질 솜씨가 기계처럼 능숙했다.



“ 개가 핥아 놓은 죽사발 맨쿠로 잘 생긴 영감이 있었는데 먼저 …. 청춘이 눈 깜짝할 사이제. 늙은 것이 남의 일 같더마는 어느새 하나씩 가부리고. 그래도 우짜노 묵고 살라 카이...”



할머니의 키를 떠난 쭉정이와 티끌이 허공에서 맥없이 흩날렸다.

노을 지는 고향 처마 밑에 팥과 메주가 붉게 내걸려 있다. 고향의 어머니는 언제나 처마 밑에 사랑을 걸어 놓고 계셨다.


땅번지의 겨울 해는 짧았다. 악양 들판을 지나던 백열등 같은 햇덩이는 들판을 녹일 새도 없이 섬진강을 건너 광양 백운산으로 ‘톡’ 떨어졌다. 금슬 좋기로 소문난 살구나무집 서금순 할머니(83)는 서둘러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폈다. 김홍우 할아버지(87)는 거동이 불편해 사랑방에 누워있었다. 열여덟에 시집와 5남매를 낳고 65년을 함께 살았다고 했다.

검게 그을린 부뚜막에 걸려 있는 무쇠솥에서 고향의 맛이 익어가고 있다. 늘 부뚜막 앞을 지키시던 어머니는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으셨다.


“핵꾜도 제대로 몬 갤차 놓은 게 자식들한테 제일 미안체.... 그래도 고향이라고 명절 때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자식들이 그리 고마운기라...”



〈글·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입력시간: 2007.02.11 17:00기사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