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앞바다, 펜탁스67카메라, 150mm, 조리개32, 1/8~1/30초, ISO50필름)
어둠이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밤새 숨죽였던 바다가 시린 눈을 비비며 마지막 잠을 뒤척일 무렵이었습니다.
해변에 무거운 카메라를 잠시 휴식처럼 뉘여 놓을 찰나, 단촐한 차림의 낚시꾼이 어둠을 뚫고 내 옆을 지나쳐 갔습니다. 욕심없는 눈망울의 반백의 중년이었지만 발걸음은 민첩했습니다. 마치 매일 새벽 그 길을 걸었다는 듯이....
동이 트고, 태양이 구름을 찢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붉음으로 물들일 무렵, 그 낚시꾼이 바다에 오랫동안 담궈 놓았던 낚시 바늘을 손깊이 들어 올리며 어둠보다 더 검은 바위를 타고 뭍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늘 그랬왔듯이 능숙하게 사각의 플레임에 마약처럼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같은 공간속에서 그와 나의 새벽의 목적은 분명히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는 해가 뜨는 시점이 일을 마치는 때였고, 나는 그때부터가 나의 일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소 비약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끝이 나의 시작이었듯이, 나의 끝은 내가 모르는 또다른 그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품 꿈을 안고 시작했던 한해가 또다시 허물어지듯 힘없이 내옆을 지나 쓰려져 가고 있습니다. 시간의 방관자처럼 한 해라는 끝이 없을 것 같은 무의식같은 사막속에서 살아왔지만, 인간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세월의 부분적 조각냄에 결국 자석처럼 이끌려 그 편의에 편승하고 맙니다.
숭고한 의식처럼 매년 치뤄내는 시작과 끝의 반복됨에 이제는 익숙해 질때도 되었건만 매번 바보처럼 끝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쉽게도 한해가 또 정처없이 가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바보처럼 또 한해를 맞이해야되나 봅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늘 그 길을 걸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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