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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풍경

찬란한 슬픔

 남제주에서도 남쪽 끝머리에 앉은 송악산. 높이는 104m 밖에 되지 않는 키작은 산이지만 남쪽바다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벼랑 앞에 서면 시원스레 탁트인 바다 너머 마라도와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이 둥실 떠 있다. 서쪽으로는 옥황상제가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내던진 것이라는 수려한 산방산이 펼쳐진다. 서서히 푸른 기운이 도는 초지 위엔 염소떼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너무나 평화롭지만 사실 송악산은 가장 치열했던 일제 수탈의 현장이다.

깎아지른 듯한 송악산의 해안절벽 아래엔 15개의 동굴이 거미줄처럼 뚫려있다. 일본이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 제주사람을 강제동원해 판 인공동굴. 당시 우리 땅에 주둔했던 일본군 중 절반 가량인 7만 명이 제주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연합군과 결전을 벌인다는 ‘결 7호 작전’을 세우고 제주도를 요새로 만들었다. 망태기로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아올리던 한 제주도민은 “저 놈의 동굴 파느라 제주 사람 많이 죽었소”라며 투박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는 울음소리처럼 쉴새없이 귀를 찌른다. 제주 사람은 송악산을 ‘절울이’라고 하는데 제주말로 ‘물결(절)이 운다(울)’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굴 안에서 바라보는 해안경관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늑한 동굴지붕 아래 자리잡고 앉으면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의 원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굴 안으로 비춰들어오는 일출의 햇살도 색다르다. 그래서 TV드라마 ‘대장금’의 마지막 장면을 찍기도 했다. 지금도 동굴입구엔 아픈 역사는 간데없이 ‘대장금’ 표지판만이 덩그러니 꽂혀있다....(중략) 


 위의 글은 후배이자 동료인 매거진엑스의 정유진 기자가 저랑 제주도에 출장갔을때 송악산에서 바라본 제주의 바다를 보고 쓴 기사입니다.(유진아 고맙다!!!.) 위의 기사처럼 저는 일제시대 제주의 아픈 흔적이 남아있는 동굴에서 일출을 태연히 바라보았습니다.  세월의 아픔은 동트오르는 아침의 기운을 결국 슬프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피의 흔적이 남아있을 듯한 붉은 동굴에서 이른 새벽 렌튼을 비추며 그 흔적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슬픈 일출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빛을 뿜어내는 바다를 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는 아픈 역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슬픈 바다는 말없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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