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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풍경

흐르는 강물처럼

 꼬리를 숨기듯 도망치는 여름의 끝자락을 잡아 강원도 봉평 흥정계곡을 찾았습니다. 때늦은 계곡은 허브나라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과 차디찬 물맛을 늦게나마 즐겨보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2년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는 계곡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계곡을 아무런 미련없이 뒤로한 채 더이상 자동차가 근접할 수 없이 숲이 우거진 인적드문 곳에서야 계곡은 비로소 그 숨겨진 속살을  보여주는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계곡의 신비로움에 빠져들기도 잠시, 빛 좋든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에 빛을 뺐겨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시후 폭탄소리보다 더 큰 굉음을 동반한 천둥이 깊은 낮잠에 빠져있던 순한 계곡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두둑, 우두둑" 빗방울까지 합세하자 어깨 넓은 우거진 숲으로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30분이 지나자 소나기는 몸을 나무밑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러자 후끈 달아던 계곡이 차가운 빗방울 만나서인지 숲가득한 계곡에 아름다운 손님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물안개'  

하얗게 피어오른 물안개는 불 지핀 마른 볕단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계곡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고요한 계곡은 오직 바위에 부딫치는 물소리만 홀로 적막을 부수고 있었습니다. 이에 질세라 철지난 8월의 신록은 하얀 물안개에 빛을 받아 마지막 남은 푸르름을 뽐내고, 예보없이 내린 철없는 소나기는 계곡 물을 조금이나마 불려 놓았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이 빚어놓은 아름다운 계곡에 홀연히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플라이 낚시꾼이었습니다. 캐스팅을 하는 그의 동작은 흐러는 물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곡예를 부리는 광대처럼 조마조마한 낚시줄은 나뭇가지 사이를 용케 피해다니고 물 많은 계곡으로 아름다운 착륙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떨리듯 속깊은 계곡의 수면을 애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흐르는 강물이 바위를 사알짝 애무하고 흘러가듯이 그는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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