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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사람

[경향신문기사] [피플]뇌성마비 지훈이의 간절한 희망

출처 : 경향신문



[피플]뇌성마비 지훈이의 간절한 희망



대통령도 주름 치료를 위해 맞았다고 하죠. 보톡스 말입니다. 유명 연예인, 정치인은 물론이고 돈깨나 있는 사람치고 보톡스에 관심없는 이가 없습니다. 주름 제거로 겉모양이나마 젊음을 되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태어나서 보톡스 주사로 생애 첫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뇌성마비 아이들입니다. 근육경직과 경련으로 고통받던 또 다른 한 아이는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어요. 여자 아이는 예쁜 발도장을 찍었다고 자랑하네요.


보톡스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값비싼, 주로 성형외과에서 쓰이는 약물입니다. 뇌성마비 아이들에게도 중요하게 쓰이지만요. 주름을 펴서 얼굴 잘 가꾸는 사람들에게만 효능을 발휘하면 된다는 걸까요. 아이의 고통을 줄이고 일어서게 할 수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못난 부모들은 포기합니다. 아예 자식놈 고통이라도 줄여주려고 어린 신경줄기를 절단하기도 합니다.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요. 부모의 가슴에 슬픔을 전달하는 신경세포는 끊을 수 없는 걸까요? 부모는 자신의 가슴을 다 파먹어버린 슬픔 속에 평생을 살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앞장서지 않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는 아이들의 부모는 하루 벌어 살기도 벅찬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위에 목소리 큰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생계를 팽개치고 나설 여력도 없죠. 주름살 제거 붐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은 뒷짐지고 있을 수밖에요.


황우석 박사의 최첨단 의학기술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거라고요. 그러나 당장 눈앞의 주사 몇 대를 맞지 못해 친구들과 뛰어놀 수도, 미래를 꿈 꿀 수도 없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맘껏 뛰어놀고 싶어요


경기 포천에 살고 있는 지훈이(8·사진)는 주로 누워서 생활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아 팔과 다리의 마비증세를 갖고 있죠. 특히 오른쪽 다리가 안쪽으로 심하게 휘었습니다. 휜 다리는 근육이 돌덩이처럼 뻣뻣해 고통스럽죠. 앉으면 균형이 맞지 않아 몇 번 뒤뚱거리다 다시 눕고 맙니다.


다행히 요즘은 다리가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고통도 덜하죠. 지난해 연말과 올 초 운 좋게 보톡스를 맞았습니다. 근육 경직을 이완시켜주는 보톡스 효과로 앉아있을 수 있는 날이 많아진 거죠. 어려운 형편 때문에 치료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무료 지원 혜택을 봤습니다.


그러나 언제 또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무료지원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한 두 차례 지원으로 끝나니까요. 지훈이가 받은 보톡스 시술비를 비용으로 따지면 3백만원 정도. 지훈이 아버지는 철거촌을 돌아다니며 고물을 주워다가 생계를 잇고 있어요. 새벽 5시에 나가 밤 9시까지 열심히 일해도 한달 80만~1백만원 수입이 고작. 요즘은 경기불황으로 철거가 많지 않아 일이 줄었죠. 지훈이 동생 원길이(1)까지 네 식구 생활비로도 빠듯합니다. 집도 고물을 가져다 놓은 마당 한쪽의 월세 5만원짜리인걸요.


“지훈이가 주사를 맞은 후에 다리가 많이 부드러워져 얼굴 표정도 밝아졌어요. 기저귀 갈 때도 다리가 전보다는 똑바로 펴지니까 한결 쉽고요. 1년에 한 두 번은 맞아야 한다는데 치료비가 비싸서 엄두를 못냅니다.”


어머니 김윤경씨(34)는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 했습니다. 지훈이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하루 12시간씩 건전지 알루미늄 씌우는 일을 했어요. 그때 고생으로 아이가 뇌성마비가 된 것으로 믿고 있어요. 건전지 한개당 15원. 가난 탓에 성치 않은 몸으로 태어난 자식이 또 그 가난으로 필요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며 소리 죽여 웁니다.


지훈이는 신읍중앙교회에서 운영하는 ‘중앙 특수 어린이집’에 다녀요.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포개기 놀이’. 친구들 등에 겹겹이 눕는 놀이죠. 일어설 수 없는 지훈이는 웃으며 소리칩니다. 안경준 목사의 다리를 붙잡고 자신을 안아 친구들에게 포개달라며 눈짓하고요. 안목사는 “아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제라면 빨리 의료보험이 적용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경남 하동에 사는 경민이(9)도 보톡스 시술이 필요한 아이예요. 뇌성마비로 누워서만 지냈던 경민이는 지난해 11월 보톡스 무료 치료를 한차례 받았습니다. 요즘은 식당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기와 걷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10년간 당뇨를 앓던 아버지는 경민이가 6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통증이 심해 물리치료도 하지 못했던 경민이. 보톡스 시술로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비로소 걷기 연습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직도 발끝에 통증을 느끼지만 걷는 게 한없이 즐거운 모양입니다. 언젠가는 예쁜 원피스에 분홍색 샌들을 신고 엄마랑 섬진강 강가로 산책 나가야지…. 그러나 보톡스 시술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다시 주저앉게 될지도 모릅니다.


젊음을 찾아주는 꿈 같은 치료제라고 합니다. 작고 투명한 병에 담겨있어요. 그 말간 것이 꼭 통증으로 고통받고 평생 걸을 수 없다는 두려움에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눈물 같기만 합니다.


〈포천|글 김희연기자 egghee@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egghee@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5년 06월 02일 16: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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