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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더/우리 곁의 난민

에티오피아의 눈물<3>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열혈 청년 타리쿠(Tariku)

 

타리쿠는 올해 33살 청년이다. 지난 16일 오후 인천 간석오거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타리쿠는 에티오피아 정부에 맞서 반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는 ‘Ginbot7’의 한국 난민 리더를 맡고 있다. 타리쿠는 발음은 서툴지만 한국말도 곧잘 했다.

 

 

▶한국에 언제 왔나?
-에티오피아 국적 화물선박에서 4년가량 근무했다. 선원들의 음식 관리와 임금관리 일을 했다.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많은 곳을 다녔다. 화물선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이 타이완이었다. 그때 모든 선원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선상에서 열렸다. 일종의 정치적 회의였다. 반정부 관련 질문이 나에게 쏟아졌고 선장과 다소 논쟁이 있었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선장이 보안요원에게 내 선실을 수색하게 했다. 보안 요원들이 선실에 숨겨 놓았던 반정부 활동 서류첩을 찾아냈다. 선장은 아프리카 지부티 항에 도착하면 나를 정부에 넘기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부산항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Ginbot7 회원 두 명과 함께 배를 탈출했고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때가 2012년 5월이었다.

카사훈가 함께 선원생활을 했던 타리쿠는 지금도 카사훈이 사는 집 근처에 살고 있다. 카사훈의 딸 지포라를 안아주고 있는 타리쿠.

 

카사훈(왼쪽)과 얘기를 나누는 있는 타리쿠

 

▶에티오피아에서 생활은?
-6남매 중 4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호텔에서 일을 했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서 한국에 오기 전까지 화물선 선원으로 일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어떤 일은 했고, 난민 인정은 언제 받았는지?
-부산항에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난민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외국인이 이태원에 가면 난민들이 많으니 그곳에서 정보를 구하라고 얘기해줬다.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를 알게 되었고 그 단체의 도움을 받아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다. 난민 심사를 받는 동안 일거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충남 아산에서 용접 관련 일을 했다. 다행히 그 공장 사장이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기부를 해오던 분이었다. 다행히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 사이 난민신청 기각 통보를 받았다. 다시 재신청을 했고 그것도 기각되었다. 막막했다. 무료법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소송을 했다. 마지막으로 제출한 Ginbot7 활동기록을 법무부가 인정해 주었다. 꼬박 3년간 매달린 끝에 난민인정을 받았다. 그때가 2015년 2월이었다.
 

▶난민 인정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강제로 쫓겨나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생활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난민신청자 비자인 G-1 비자에서 거주비자인 F-2로 바뀐 것 이외에는 큰 변화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난민인정을 받게 되면 오히려 입장이 애매해진다. 한국인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그 사이에 끼어서 혜택도 없고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난민들이 처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한국에는 500~600명의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300~350명이 난민이다. 한국의 난민신청 방법에 문제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예를 들기가 힘들 정도다. 일단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난민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고만 한다. 난민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얼마 전 한 난민이 난민신청을 하며 원본서류를 첨부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원본서류가 필요해 돌려달라고 요청했더니 담당 직원은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래서 그 난민은 진짜 경찰이 올 줄 알고 뛰쳐나왔다고 했다.
최근에는 아주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에티오피아 출신 한 난민이 난민신청 소송에서 승소를 했다. 그런데 법무부가 법원에 항소를 하고도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기각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그 난민은 비자연장을 하러 갔다가 바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었다. 지금은 쫓겨날 처지다. 지난달 22일 청와대 앞 집회는 그 일을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3D 업종 외에는 난민들이 일할 곳이 많지 않다. 난민들 중에는 전문직에 있던 사람들도 많다.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하는 일은?
-인천 남동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제조 공장에서 일했다. 지금은 잠시 쉬는 중이다. 자동차 면허가 있으면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인천아트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집근처에서 장을 보는 타리쿠.

 

▶Ginbot7은 어떤 단체이고 한국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미국과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고 에티오피아 민주화를 위해 8년 전에 설립된 단체다. 정식 명칭은 ‘Patriotic Ginbot 7 Coalition for Unity Democracy & Justice’다. Berhanu Nega 박사가 지도자다. 전체 회원숫자는 비밀이다. 북아메리카, 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15명의 난민회원이 있다. 그 중에서 7명이 난민인정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한다. 에티오피아 정치 상황에 대한 토론을 하고 적은 돈이지만 활동 기부금도 모아 송금하고 있다.

Ginbot7 회원들의 정기모힘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타리쿠(맨 왼쪽)

 

한자리에 모인 Ginbot7 회원들

 

▶앞으로의 계획은?
-에티오피아에 진정한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경제학 공부를 더 하고 싶다. 한국에서는 난민들이 교육받을 권리도 없는 것 같다. 안타깝다. 난민들이 처한 입장을 많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에티오피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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