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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다큐] 情·인심의 장터 “젊은 사람 빼곤 다 있당께…”
한결같이 걸어온 길 “오늘 장은 일찌감치 파장이여~.” 수레 가득 싣고 왔던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집에로 가는 할머니들의 발걸음이 푸른 하늘만큼이나 가볍고 경쾌하다. 할머니들은 몸뻬바지 속 쌈지에 장터에서 두둑이 담아온 소박한 행복을 숨겨 가고 있었다. <전남 곡성> |
엿장수 가위 장단에 딱딱 맞춰 청산유수로 품어내는 품바타령이 구수하다. 여름의 허리를 모질게 붙들었던 지루한 장맛비가 그친 8월 초. 시골장터는 각설이의 ‘장타령’만큼 흥겹다. 산전수전 다 겪은 70줄 노인도, 아들 딸 시집·장가 다 보낸 60줄의 아주머니도, 할머니 손 잡고 나온 손자들도 장 구경에 8월 가마솥 더위를 잊은 모양이다.
세월의 무게 재롱둥이 손자보다 무거운 마늘을 등에 업고 한 할머니가 장터로 향하고 있다. 한평생 밭일에 이제는 등까지 굽었지만 마늘 바꾼 돈으로 손자에게 새 운동화라도 사줄 마음에 먼길도 한걸음이다. <경남 하동> |
옛날 장터에 들어서면 쉽게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은 결코 물건이 좋아서가 아니다. 어설픈 거짓말을 토해내는 장돌뱅이의 상술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상품은 촌스럽고 포장도 시원찮다. 한데,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평생을 바보처럼 살아온 우리 고모 같고, 아재·당숙 같은 얼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렀어도 장터는 새벽부터 북새통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꼭두새벽, 풋고추와 깻잎이 담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할머니들이 장터 입구에서부터 ‘뽀르르’ 달려와 목 좋은 자리를 먼저 잡겠다고 승강이를 벌인다. 일찌감치 노인네들을 물리친 방물장수는 그늘 막을 치고 플라스틱 의자를 몇 개 놓고 그 위에 합판을 깔아 근사한 좌판을 벌여 놓았다. 자리가 따로 정해지지 않은 장꾼들의 한바탕 부지런한 소동이 끝나면 장터는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호박잎 바구니 하나만 길바닥에 놓고 팔고 계시는 백발의 할머니는 담뱃값이라도 벌려고 나왔다며 ‘별 것 아닌’ 호박잎을 하루종일 다듬는다. 50년 넘게 장터를 누비며 싸리비와 수수빗자루를 팔러 다니신다는 칠순의 장돌뱅이 할아버지는 장터에서 번 돈으로 읍내 터미널 옆에 3층짜리 건물을 올리셨다고 자랑이다.
“우리 아들이 서울서 대학을 다닝당께….”
여름 볕이 매서워 천막을 뚫고 등줄기를 훅훅 볶아내고, 장터 한 쪽에 자리 잡은 뻥튀기 아저씨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허리에 맨 생선장수 부부의 쌈지가 두둑해지고, 싸움에 가까운 흥정소리로 좌판마다 시끌벅적거리면 닷새 만에 열리는 시골 장터는 막걸리 한 사발에 절로 나오는 할아버지의 어깨춤처럼 흥겹게 익어만 간다.
한 걸음만 나서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대형 할인매장과 백화점에 밀려 우리의 삶속에서 잊혀버린 시골 5일장.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해주는 바코드의 전자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풋풋한 사람의 정(情)이 샘물처럼 넘쳐흐른다. 비록 셈이 느리고 틀려도, 손자놈하고 같은 서울에 산다는 말 한마디에 전대에서 때묻은 1,000원짜리를 내주며 국수 사먹으라던 할머니. 거기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세상이 따뜻하다.
‘개점’ 준비 장터 모퉁이 길은 야채를 파는 아낙네들의 차지다. 장터가 예전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투박하게 진열해 놓은 바구니마다 소박한 시골 인심이 가득 담겨져 있다. <전북 남원> |
덤도 듬뿍 흥정 끝에 콩나물을 한 움큼 더 집어 주는 할머니의 손길. 작고 투박한 손이지만 덤을 담아내는 정(情)은 시골 5일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전남 구례> |
좌판마다 이야기꽃‘장터에서 번 돈으로 6남매를 모두 키웠다’며 자랑을 늘어놓으시는 박정인 할머니.(77·사진 오른쪽) 이마에는 밭고랑보다 깊은 주름살이 패여 있지만 할머니의 환한 웃음에는 삶의 진솔함이 배어나고 있다. <전남 옥과> |
〈사진·글|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입력시간: 2006.08.06 17:23 | 기사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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