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군인용품골목 지킴이
남대문시장에서 군인용품골목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일개 사단 병력을 완전 군장시킬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때 호황을 누렸다. 60개가 넘는 점포가 골목을 빼곡히 메웠지만 지금은 20여개만 남아있다. 김병옥씨(50)는 군인용품골목 상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어머니 남인심씨(74)가 운영하던 점포를 물려받아 25년째 골목에서 장사를 해오고 있다.
군인용품골목에서 25년째 장사를 해오고 있는 김병옥씨.
군인용품골목은 노점 형태의 상가다. 비가 오면 제대로 물건을 팔수가 없었다. 지금은 천장패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비가와도 끄떡없다. 군인용품을 찾아간 지난 19일 김씨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지난 1985년 10월 무렵에 찍은 것이었다. 사진에는 당시 노점상들이 엄청난 양의 군수 물품을 골목에 쌓아 놓고 팔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군인용품골목의 전성기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주말에는 떠밀려 다녀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지요”
전성기 때의 군인용품골목 모습.
1985년에 찍은 군인용품골목(왼쪽사진)과 비슷한 위치에서 찍은 현재의 모습 비교.
명동에서 귀금속 일을 하던 김씨는 25살 되던 해에 남대문시장에 뛰어 들었다. 당시 김씨의 어머니는 군인용품골목에서 수선 집을 하고 있었다. 김씨는 어머니의 상가 한편에서 미군이 쓰던 야전점퍼나 침낭 등을 팔았다. 당시에는 군수품을 수집하는 마니아층과 사냥이나 버섯채취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막노동을 하던 사람들에게도 군복은 인기 있는 옷이었다. “군복은 사계절 내내 팔렸지만 대부분의 군수품은 겨울 장사였습니다. 겨울 석 달 벌어서 1년을 살았으니까요”
노점이지만 천장패널이 설치되어 있어서 비가 와도 끄떡없다.
군인용품골목에서 판매하고 있는 물건의 20~30%는 여전히 미군용품이다. “휴가 나온 카투사들이 물품을 조금씩 가져다 줬는데 지금은 아예 없습니다. 예전에는 수도방위사령부와 육군본부 등에서 한 달에 1~2번씩 단속을 나왔습니다. 물건을 압류당하고 벌금도 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군인용품골목은 2천 년대에 들어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김씨는 한때 직장 다니는 친구들 월급의 2~3배가 넘는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벌이가 예전만큼은 되지 않는다. 3년 전부터 밀리터리 패션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주요 고객은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생각도 여러 번 해봤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다른 일을 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그래서 오랫동안 해오던 이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군인용품골목은 D동과 E동 사이에 있다. 월~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