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초보농부의 두 번째 봄>
지리산 노고단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남 구례군 용방면 사림마을. 이 마을 신참이자 막내인 원유헌(46)씨는 2년 전 귀농한 초보 농부다. 귀농 전 그는 서울의 한 일간지에서 20여 년간 사진기자로 일했다. 밭에서 감자 심을 두둑을 일구고 있던 그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동네 분들에게 여쭤보니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귀농을 결심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지요. 첫째가 비닐, 농약, 사람을 사서 쓰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봄철이면 연둣빛 풀이나 붉은색 황토 대신 검은색 은색 비닐들이 온 땅을 뒤덮고 있는 것이 싫었거든요. 작물들을 내내 습하고 후끈거리는 땅속에 가둬두는 것도 싫었고요. 사람을 사서 쓰지 않겠다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고요.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은 당장 수확이 적더라도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죠.”
-마을 분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농약을 쓰지 않겠다는 말에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 박사라도 안 되네!’라고 걱정스런 충고가 많았었지요. 지금은 많이 이해해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농작물에게 줘야 한다는 것이 나의 두 번째 원칙입니다.”
-운전으로 치면 초보운전인 셈인데 귀농 첫해의 수확이 궁금합니다.
“지난해 논 다섯 마지기(약 1,000평)로 시작했는데 104년 만에 찾아온 가뭄과 3번 연속 몰아친 태풍으로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미수(米壽)의 노인들도 ‘올해 같은 날씨는 평생 처음이네’라고 몇 번을 위로했지만 첫 시집살이 치고는 정말 매서운 여름이었지요. 그때는 하늘이 원망스럽더군요. 다행히 가을 추수 때는 80kg으로 17가마니를 했으니 초보치고는 성적이 좋은 셈이었죠.”
-밭농사는 어땠나요.
“마을 노인들로부터 누차 들었던 ‘풀은 못 이긴다’는 말을 처음에는 안 믿었었는데 벌레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더군요. 산새와 들꽃들이 얼마나 미워지던지. 어쨌든 풀과 벌레들과의 첫 싸움에서 내가 깨끗이 졌지요. 하지만 한해 한해 나아지겠지요.”
-초보농부로서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인데요.
“아직 농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땅의 기운과 상호작용을 믿어 보려고 합니다. 며칠 전 밭을 갈면서 간절히 기도한 것이 있어요. ‘땅님 하늘님, 이제 당신의 능력을 실감했습니다. 뜻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잘 살겠습니다. 그러니 벌레랑 새들에게 말 좀 해주세요. 한 쪽만 먹고 한 쪽은 제발 남겨 주라고. 여기 저기 건드리지 말고 몰아서 뜯어 먹으라고. 그러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라고.”
구례/사진·글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