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토요일.
천둥 번개가 몰아친 새벽이 지나고
계획했던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이 밝아왔다.
사선으로 떠오른 맑은 태양은
뭍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부지런한 어부의 배에 상쾌한 하루를 선사한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흥 수문리의 전망 좋은 숙소에서
밤새 꺼내놓았던 짐들은 다시 배낭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열흘 여행의 마지막 장소를 생각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유명해서 막상 가보지 못했던 곳.
보성 녹차밭이다.
차를 따는 계절은 아니지만 빛이 빚어내는 차밭의 곡선미는
사진으로 봤던 그것보다 더 매혹적이리라.
쉽게 찾을거라 생각한 친숙한 사진속 그 유명한 녹차밭.
키큰 삼나무 숲에 꼭꼭 잘 숨어 있다.
한낮에 도착한 탓에
사광(斜光)이 빚어 내는 차밭의 온전한 곡선미는 찾아볼 수는 없지만
행여나 구석구석 올려보고 또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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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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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밭을 빠져나오니 대나무 숲길.
강열했던 정오의 빛 한점이 대나무 숲에 숨어 있다.
나른한 낮잠을 청하느라 오후가 넘어서도 쉬이 깨지 않는다.
차밭 입구 버스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며 재잘대는 여대생들.
나풀대는 머리결 사이로 가늘게 쓰러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긴 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열흘이 흘렸다.
당차게 나섰던 나의 여행도 이 길에서 끝을 맺는다.
길에서 길을 묻던 하루 하루의 여정.
한걸음 한걸음 느리게 걷던 열흘의 길 끝.
뒤돌아 본 그 길은
나의 긴 그림자 너머로 또 아련히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