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목요일.
어느덧 여행 8일째다.
아침에 보길도를 떠나 완도행 배를 탄다.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견문록 '열하일기'의 내용중에
하루에 강(江)을 아홉 번을 건넜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오늘 나는 바다를 다섯 번 건넜다.
보길도를 출발해서 노화도,완도,신지도,고금도,조약도.
완도군에 속하는 완도와 신지도,고금도,조약도는 작은 바다를 서로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완도와 관련된 옛 추억 하나.
초등학생 3학년 때의 일이다. 시골에서 부산으로 전학온 나는 친구가 없었다.
마침 같은 반에 완도에서 전학온 까까머리 촌놈이 한명 더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그의 손에 이끌려 작은 핫도그 가게를 하던 녀석의 집에 가게 되었다.
다락방에 올라 놀고 있던 그때.
친구의 어머니가 들고 오신 핫도그 2개. 그것도 뻘건 케찹이 예쁘게 발린...
난 아직도 그 붉은 핫도그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완도하면 그 핫도그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완도를 거쳐 신지도 명사십리(明沙十里)해수욕장을 찾았다.
철지난 해변은 모래우는 소리가 십리에 걸칠만큼 사람이 없어 고요하다.
이따금 해변을 찾은 단체 여행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는 훌쩍 가버린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mp3 음악을 들으며 2시간.
해변의 시간은 고요하게 흐른다.
신지도에서 고금도를 연결하는 송곡항.
일흔이 넘은 여객선의 노선장은 손님을 기다리며 긴 담배를 물고 있다.
구렛나루에 난 하얀 수염이 인상적이다.
조만간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다리를 완공되면 그도 낡은 철선도 퇴역을 할 것이다.
고금도 버스터미널에서 조약도행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한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와르르 다가왔다.
카메라가 신기한듯 힐끗힐끗 쳐다본다.
녀석들에게 카메라를 넘겨 주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카메라는 처음'이란다.
한동안 난 그들의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조약도 동쪽끝 가사해수욕장.
지도만 보고 찾아가다 벌써 날이 저문다.
배도 고프고 되돌아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인다.
간신히 찾은 해변가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방금 물가에서 낚시로 잡아왔다며 고등어 조림을 내놓는다.
집 나선 후 처음으로 후한 저녁을 먹는다.
고등어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었다니...
고요한 조약도의 밤.
적막을 깨는 개짖는 소리.
까만 밤하늘엔 별이 참으로 많이 박혀있다.
보길도를 떠나던 아침에.
완도에서 신지도 가는 버스안에서. 완도와 신지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
철지난 해변엔 노란 튜브도 한가롭다.
고요히 흐르는 해변의 시간.
신지도를 떠나는 길가. 강아지풀 하나 다가와 나에게 풍경이 된다.
벼 말리는 풍경.
신지도 송곡항과 고금도 상정항을 오가는 철선 신진호의 김길동 선장. 올해 연세가 일흔여섯이란다.
그의 손도, 그의 철선도 낡고 검게 물들었지만 이웃을 나르는 철선과 그의 하얀 웃음은 두 섬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신지도와 고금도를 운행하는 시골버스가 철선에 실려 바다위 도로를 건너고 있다. 나는 버스비와 배삯을 동시에 내야 했다.
고금도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아이들.그들도 나도 서로의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채은아 고맙다.아저씨 사진 멋지게 나왔구나!)
조약도 가사해수욕장. 민박집 아주머니는 바다에서 갓 낚아온 고등어로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 주신다.
섬에서의 하루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나의 여행도 어느새 끝을 맺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