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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동학사 가는 길




도보 여행의 골치꺼리는 무거운 배낭이다.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것이 가득찬 경우에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짐이 그야말로 짐이되는 형국이다.

여행 이틀째.
지난밤에는 잠을 설쳤다.
민박집 난방이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도 아침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간밤의 노고를 보상했다.

오늘의 여정은 갑사를 지나 계룡산을 넘어 동학사로 가는 것.
오전 햇살이 비추니 누런 들판이 황금처럼 빛난다.
부지런한 농부는 한톨의 황금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논두렁을 높이며 삽질을 한다.
밤새 처 놓은 거미줄 어망엔
성찬을 기뻐하는 색동 거미의 찢어진 웃음이 마음 것 걸려 있다.

갑사를 지나다가 어제는 보지 못했던 곳을 발견했다.
전통찻집.
찻집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작은 절벽을 따라 계곡이 펼쳐진다.
몇년 전 갑사 계곡에서 찍었던 선배의 사진이 떠올랐다.
"오~호!  여기서 찍어셨군."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어가는 산길은 험악했다.
배낭에 매달고 가는 아침 겸 점심 도시락이
등뒤에서 굶주린 배를 약올리며 '바스락, 바스락' 노래 부른다.
정오를 넘겨 도착한 금잔디 고개에서 '바스락'君을 먹어 치웠다.

남매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어서다.
선생님을 따라 온 한무리의 초등학생들이 남매탑을 둘러싸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도 드로잉북을 꺼내 남매탑을 그리고 있자니
한 꼬마 녀석이 다가와서 묻는다.
"아저씨 화가세요?"
"..........."

남매탑에 얽힌 설화는 이렇다.

'옛날 이 곳에 한 스님이 기도하던 작은 암자가 있었다.
 하루는 한밤중에 범이 찾아와 으르렁거렸다.
스님이 자세히 보니 범의 목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
스님이 범의 목구멍에 손을 넣어 걸려 있는 비녀를 빼주었다. 그러자 범은 이내 사라졌다.
그 이튿날 범이 다시 나타나 스님을 등에 태우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범이 숲 속에 스님을 내려놓는데 그 곳에는 기절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스님은 여자를 암자에 데리고 와 치료를 하였다.
깨어난 여인이, “혼인을 하루 앞두고 뒷간에 갔다가 잡혀왔다.”고 하자,
스님은, “날이 밝으면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여인은 범에게 잡혀온 자신이 죽지 않고 암자에 머물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더군다나 스님과의 인연은 부처님이 만들어준 인연인 것 같았다.
그래서 스님이 귀향할 것을 권해도 끝내 가지 않고, “스님과 함께 불도를 닦겠다.”고 결심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오뉘의 연을 맺고 일생을 더불어 이 암자에서 수행하였다.
뒷날 사람들은 이 두 오뉘의 인연을 기려 탑을 세우고, 탑의 이름을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고 불렀다.'

남매탑을 그리느라 꼬박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완성된 것을 보니 조금전 초등학생들이 그렸던 것만 못하다.
사진만큼 쉽지 않은 것이 그림이다.
동학사로 내려오는 길은 지루하게 계속되는 돌길이었다.

내일 여정은 충남 부여로 향하기로 정했다.


민박집을 나서던 길에 만난 농부의 아침 손길.


아침 성찬을 준비하는 거미.


갑사 입구 식당앞에 놓여있는 초대형 고구마. 오른쪽 고구마를 보니 여우의 얼굴처럼 생겼다. 담뱃갑에 그려진 고양이가 움추릴 정도다.



갑사 오른쪽에 있는 전통찻집.



갑사 계곡은 여전히 신록이다.







산에서 만나는 돌계단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삼불봉에서 처음 마주친 단풍.









 
삼불봉 정상.


남매탑.


남매탑에서 만난 초등학생 동규와 정빈이 그린 남매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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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을은 어둠속에서 불타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