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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비행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침엔 비가 많이 내렸다.
한바탕 꿈을 끈낸 오후엔 유난히 화창한 햇살이 창가를 비춘다.
눈을 비비고 나니 베란다 앞 공터에 심어 놓은 코스모스가 아침에 내린 비로 몇몇이 쓰러져 있다.
아직 어린 놈들이라 손길을 바랬다. 쓰러진 것들을 일일이 세우고 나니 등줄기가 훅훅 볶는다.
햇발이 기울고서야 학교 운동장으로 갈 기운이 생겼다. 
틈틈이 운동을 한지 벌써 3개월째.
운동이라 해봐야 팔굽혀펴기,윗몸일으키기, 달리기 3종목이 전부지만
1시간은 족히 걸리는 여름날 저녁의 괜찮은 소일거리다.

맨발로 운동장을 돌다가 올려다 본 저녁 하늘이 예사롭지 않다.
비 온 뒤의 맑은 노을은 눈으로만 보기엔  너무 아깝다.
사진쟁이의 숙명은  결국 노동을 동반해야 하는 법.
운동장을 달리던 속도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건너편 아파트를 올랐다.
다행히도 더위에 지친 여름밤 노을은
마곡동과 김포공항 들녘을 미처 다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너른 하늘.
파리만큼 작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솟아올라  붉은색 물감을 뿌려놓은 저녁 하늘을 날고 있다.
황홀한 비행.
잠시만이라도 떠날 곳을 찾고 있던터.
그 풍경이  아련하기만 하다.
저녁 노을을 작은 창으로 지켜보며 좋은 곳으로 향하는
비행기속 사람들은 오늘 참 행복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