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는 인사동으로 간다.
비오는 인사동은 더 운치가 있다.
갓 볶은 커피향 구수함을 맡으며 인사동을 거닌다.
부채 가게앞을 지나는 쏜살같은 발걸음이 좁은 골목길에 바람을 일으킨다.
아빠가 들고 가던 우산은 살아온 세월만큼 우람차지만
아이들의 작은 우산은 바람앞에 초라하기만 하다.
작은 구멍사이로 바라본 녹색 열매.
아직 여름은 길기만하다.
TEA SHOP TEA CAFE앞.
가을을 향해 자라는 꽃은 긴 다리 예쁜 머리로 조명앞에 섰다.
굳게 닫힌 미다지문.
밤으로 가는 창호지 안쪽에서는 사랑이 꽃피고 있을까?
인사동은 소비의 장소인줄만 알았더니
생산의 숨소리도 새근 새근 들린다.
포장을 벗은 폐지는 할머니의 웃음.
빗방울 무게가 더해진 저울은 뒷골목 공터에서 춤을 춘다.
수레뒤의 할머니.
낡은 뒷굽만큼 수레바퀴도 닳아서 돈다.
폐지가격 10kg=1000원
돈을 내려놓으니 행복한 뒷웃음.
홀로 남은 붉은 장갑.
빗속에서 오늘의 땀을 씻어 낸다.
아무도 눈길주지 않는 오래된 요강.
문양이 촌스럽다고 눈길 함부로 주지마라.
내가 들고 있는 시든 장미꽃보다 아직은 초라하지만
찬란한 내일을 잉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산이 우산을 품고 있는 비오는 거리.
사각의 사진속에 박제된 왕의 남자는
문이 열려야만 웃으며 인사동을 부른다.
밤이 익어가는 마지막 불꽃.
인사동은 처마끝에서 뚜우 뚝 울음을 끊어 낸다.
돌솥비빔밥 손님이 떠나간 골목길.
한숨돌린 의자는 밤에만 높게 세상을 바라본다.
낡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째즈의 음율이
잘 익은 개암 냄새보다 향긋하다.
비오는 날
거울에 비친
나는
인사동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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